Anthology by Dusty Springfield
‘가을’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 오르는지요? 낙엽, 우수, 이별, 청명한 하늘, 살찐 말, 독서……
음악을 살펴보면 각 국가나 지역마다 존재하는 정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별과 관련된 노래의 배경이 되는 계절이 주로 가을입니다. 예를들면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이라든지, 최백호의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라는 가사가 나오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라든지, 신계행의 “가을사랑” 등이 모두 가을을 배경으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양은 어떨까요? 서양은 의외로 이별의 배경이 되는 계절이 주로 여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은 보통 사랑이 시작되는 계절 아닌가요? 거 왜 어느 여름, 이름 모를 바닷가에서 놀러 왔다는 기분에 취해서 얼떨결에(?) 사랑이 시작되곤 하지 않나요? 그런데 그게 서양에서는 사랑이 끝나는 계절이랍니다. 가장 애절한 이별 노래 가운데 하나인 If you go away 의 가사를 보면 “If you go away on this summer day then you might as well take the sun away.”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 다른 노래로는 아마도 제가 알고 있는 노래 가운데서 가장 슬픈 이별 노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Led Zeppelin의 Baby, I am gonna leave you 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I’ll leave you when the summertime. Leave you when the summer comes a-rolling. Leave you when the summer comes along.” 신기합니다. 그렇잖아도 더워서 짜증나는 여름 날에 무슨 염장 지를 일이 있다고 이별을 할까요? 하기사 뭐 이별이란게 마음이 안 맞으면 하는거지 계절 가려가면서 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쨌든 이런 것도 아주 묘한 동서양 문화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드디어 이 글의 주제인 If you go away 가 나왔습니다.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인데 원곡은 1959년에 프랑스의 가수 쟈크 브렐이 샹송으로 발표한 곡입니다. 이 원곡은 너무나 애절해서 듣다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미국의 시인 로드 매킨이 쟈크 브렐의 곡에 영어 가사를 붙였고 그 곡을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Dusty Springfield 라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수가 불러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닐 다이아몬드 등 많은 가수들이 또 다시 리메이크 했습니다.
Dusty Springfield 는 전설적인 영국 출신의 가수입니다. ‘전설적’이라는 말이 상투적으로 들립니다만 Dusty Springfield 는 실제로 전설입니다. Elton John은 “나는 그렇게 노래하는 백인 여자 가수를 본적이 없다. 같은 백인이면서 내가 하지 못한 것을 그녀는 해 내었다” 라는 헌사를 Dusty Springfield에게 바쳤습니다. 이 말은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흑인만의 음악인 soul을 흑인보다 더 잘 불렀다는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녀는 위대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음악인으로서 엘튼 존이 못 한게 뭐가 있을까요?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수 많은 히트 곡을 작곡하고 부른 싱어 송 라이터이지요. 만인의 연인이었던 다이애나가 죽었을 때 그 추모곡 마저 작곡해서 노래를 부르는 등, 주요 행사때마다 엘튼 존의 노래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국가에서 주는 훈장은 물론이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엘튼 존 경(Sir Elton John)이라고 부르지요. 그런 엘튼 존이 극찬을 한 가수가 바로 Dusty Springfield 입니다. 참고로 Dusty Springfield 도 영국 국가 훈장을 받았습니다.
Dusty Springfield는 193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21세에 히트 곡을 내었고 유명해지기 시작했지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활동을 했고 심각한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말년에는 유방암으로 고생하다가 1998년 3월 3일에 5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사망 후 2주 뒤에 Rock and Roll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Anthology라는 앨범은 그야말로 Dusty Springfield의 모든 히트 곡을 총 망라한 Memorial 음반입니다. 모두 세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곡을 언급 할 수는 없고 수록곡 중 대표곡 몇 곡을 소개합니다. 먼저 앞 서 언급한 If you go away. 쟈크 브렐의 느낌을 영어로 옮긴 가수 가운데 가장 이별의 아픔을 잘 노래한 곡입니다. 어느 누구의 If you go away 를 들어보아도 Dusty Springfield 를 따라 가지는 못 하더군요. 또 다른 곡으로는 언젠가 무슨 CF에 나온 곡인데 사람들이 다들 “아니, 이게 누구 노래야?” 라고 했던 The look of love도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라든지 영화 빠삐용의 주제곡이었던 The windmill of your mind, 수 없이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했던 Yesterday when I was young, 그녀의 최대 히트 곡중에 하나인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 같은 그야말로 주옥 같은 명곡들이 빼곡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매력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는 Dusty Springfield 의 노래는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 층 더 진하게 느껴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