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오심 유감

2006년 월드컵에서 가장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는 득점왕 클로제도 아니고 박치기왕 지단도 아닌, 아마도 “오심”이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더니 이제 축구는 심판 놀음이 되었나 봅니다. 상대 팀이 어떤 팀이냐 보다는 이번 경기에 누가 심판을 보느냐에 더 신경을 곤두서야 할 판이 되었습니다.

영어로 스포츠 경기의 심판을 의미하는 단어는 umpire와 referee라는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umpire는 주로 야구, 배구,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등의 경기의 주심을 의미하는 반면 referee는 축구, 농구, 럭비, 레슬링, 권투 같은 경기의 주심을 가리킬 때 씁니다. 전자는 대체적으로 판정이 명확하며, 주심의 역할이 말 그대로 게임이 원만히 진행되게끔 끌어가는 ‘운영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후자는 육체적 접촉이 잦으며 같은 파울이라도 보는 상황이나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점에서 ‘판정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umpire가 ‘운영’하는 경기보다는 referee가 ‘심판’하는 경기가 판정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것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고 유독 이번 2006년 월드컵에서 이리도 판정에 관한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찌된 일 일까요?

여기에는 두가지의 요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실제로는 2002년과 비슷한 상황이며 딱히 오심이 증가하였다고 볼 수 없지만 증가된 것 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오심이 실제로도 증가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먼저 오심이 증가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방송 기술 덕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오프사이드나 파울은 있어왔고 그때마다 심판의 판정도 뒤 따랐습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는 심판은 가장 가까이에서 선수들의 행동을 지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아주 짧은 순간 한가지 각도에서 한번 밖에 보지 못 한다는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안방에서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여러가지 각도에서 느린 화면으로 몇번이고 그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 월드컵에서는 한 경기당 27개의 카메라가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심판이 ‘오심 비슷한 것’을 하더라도 미심쩍어 하면서 ‘에이~ 아닌것 같은데……’라는 말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심판이 못 보는 장면을 시청자들은 코 앞에서 보고 있으니 바로 ‘오심이네’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뛰어난 방송 기술 덕분에 오심인지 아닌지 애매하던 것들이, 그래서 심판의 판정에 미심쩍어 하면서도 달리 방도가 없던 것들이 이제는 더 많이 오심으로 ‘적발’되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의 수 많은 오심들은 묻혀서 사라졌지만, 요즘의 오심들은 묻기에는 너무 많은 눈들이 너무 많은 각도에서 너무 자세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오심 자체가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증가 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며, 이는 심판도 인간인 이상 언제나 명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용서가 가능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2006년 월드컵에서는 위와 같이 인간인 이상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오심 이외에,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다분히 ‘의도’된 오심도 있어 보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심판들이 자신의 양심을 속여가면서까지 의도된 오심을 할까요?

이번 대회에서 심판들의 직업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로웠습니다. 교사, 시인, 농부 등 다양한 직업군들로 구성된 심판들은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심판이 된 사람들이고 공정한 심판을 보지 못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일생에 한번 월드컵의 심판이 된다는 것은 본인으로서도 대단한 영광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FIFA는 심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수당을 대폭 인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단추가 잘 못 끼워진 느낌이 듭니다. 심판들은 실업자가 아니라 직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월드컵의 심판이 된다는 것을 대단한 명예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심판 수당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FIFA가 심판의 수당을 올림으로서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FIFA는 심판들의 수당을 두 배로 올릴 것이 아니라 항공료와 체제비 정도를 지급하는 정도로 오히려 줄였어야 한다고 봅니다. 수당이 올라가면 다음 월드컵때 또 심판으로 뽑히고 싶은 욕심이 작용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축구 강국이나 FI݂FA 관계자들이 보기에 흡족한 판정을 내리도록 하는 심리적 갈등을 강요받게 됩니다. 그들의 수당을 올리는 대신 오히려 수당을 줄여서 명예직으로 두었으면 양심에 떳떳한 판정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렇듯 이번 2006 월드컵은 예전 같으면 가려지기도 하는 오심이 더 많이 드러나고 의도적으로 보이는 악의적인 오심도 더 많이 늘어나고 하면서 오심 월드컵이란 불명예도 함께 기록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비디오 판독이나 칩의 삽입을 통한 경기의 전자 심판화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게임의 흐름을 끊으며 삭막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리고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는 말도 옳은 말입니다. 다만, 심판이 자신의 양심을 팔아먹지 않은,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내릴 수 밖에 없는 오심의 경우에만 경기의 일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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